2021. 2. 8. 08:10ㆍLESSON BOOK
잠시 수채화를 놓고 외유중이라고 하기에는 옛 기억이 새록 새록 돋아나게 하는 새로운 재료에 살짝 빠져 들었다. 커뮤니티를 통해 다른 분들이 올려 주시는 그림을 보고 혹해서 무슨 책인가 찾아 보니, 과슈를 사용하는 책이었는데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모르는 재료인 것 같기도 하고 알쏭달쏭한데 보송보송하고 부드러운 색이 좋아 보여서 한 달을 벼르다가 주문했다.
수채화가 너무 어려워서 정말 내 갈 길이 아닐지도 모르는데 혹시 과슈는 조금 낫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고 세밀하게 묘사하는 보타니컬 아트, 보타니컬 일러스트레이션 역시 내가 해소하기 힘든 영역인데 괜히 사서 고생하고 있지 않나 싶은 마음도 있어서 다른 기법은 어떤지 확인해 보고 싶기도 했다.
과슈가 대체 뭔지 궁금해서 검색을 해 보니 의외로 낯설지 않은 재료였다. 포스터칼라가 과슈의 저렴한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는 내용을 발견했을 때, 그 옛날 입시를 준비하기 위해 매일 포스터칼라를 들고 구성 디자인을 하던 때가 오버랩되면서 멍해졌다. 짧은 기간동안 미대 입시 준비를 한 내게는 기초 디자인이었나 표현 디자인이었나 그런 이름의 일러스트 수업 시간이 너무 고역이라 점수를 받기 위해 억지로 그려가며 숙제만 겨우 했었던 그 지난 시절도 함께 떠올랐다. 입시가 끝나자 마자 포스터칼라를 다시 쳐다본 적이 없었고, 그 비슷한 재료로 일러스트를 그릴 수 있다는 생각조차도 해 본적이 없었던 터라 마냥 신기한 기분이었고, 과슈는 포스터칼라와 어떻게 다른지 많이 궁금했다.
물감과 붓이 도안이 인쇄된 종이가 함께 구성된 가이드북이라 쉽게 그럴듯한 그림을 그려낼 수 있게 구성된 책이라 좋았다. 가장 불편했던 점은 물감에 적혀 있는 물감 이름이 너무 아름답기만 필기체라서 읽는데 한참 걸려서 짜증이 조금 날 뻔 했다는 것이고, 각 그림을 완성하는 법에 대한 상세한 안내와 개요가 별도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미처 확인하지 않고 처음에는 개요 페이지만 보면서 물감 이름이 아니라 물감의 번호만 기입되어 있어서 물감 찾기 불편하다며 투덜거렸는데, 나중에 상세 페이지에서 물감 이름과 번호가 함께 적혀 있음을 확인하고 안심했다. 그래도 물감 튜브에 이름 인쇄하면서 책에서 사용하는 번호 하나씩 함께 찍어 주셨다면 아주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들었다. 책을 읽는 사람이 모두 개요도 보고 상세 설명도 꼼꼼히 보면서 따라하라는 법은 없다. 포스터컬러가 익숙해서 그런지 앞 장 개요와 완성본만 보고 마음 급하게 칠하는 나같은 사람도 있다.
물감은 포스터칼라와 별반 다르지 않아 익숙해서 쉽게 칠할 수 있었다. 예시와 똑같은 색을 만들려고 굳이 애쓰지 않고 마음 편한대로 손 가는 대로 칠할 수 있었다.
붓도 불편하기는 했다. 사실 맨 앞 부분 설명도 대충 읽어 넘기고 붓을 잡았는데, 함께 구성된 붓이 세필이라고 하기엔 꽤 둥글고 붓 끝이 뭉툭해서 세필을 사용하라고 안내된 부분에서 세필로 바꾸지 않으면 그림을 완성할 수 없는 상황이라 당황했다. 적당히 둥글고 적당히 작은 사이즈의 붓이었지만 더 작은 부분의 묘사에는 꼭 세필이 별도로 필요했다.
명필은 붓 탓을 하지 않는다지만 그래도 붓이 좋으면 좋은 만큼 좋은 그림이 그려지기는 한다. 그게 꼭 비싼 붓이어야 하는 것은 또 아니다. 포스터칼라는 평붓으로만 칠해버릇해서 둥근 수채화 붓이 일단 어색하기도 했고 평붓이 좋은지, 둥근 붓이 좋은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꽃 잎 같은 뾰족한 끝 처리에는 둥근 붓이 좋긴 하겠지만 묽은 물감을 둥근 붓으로 칠하다 보니 외곽선 다듬는 일이 쉽지도 않고 이게 그냥 손에 익지 않아서인지 적당한 붓이 아니라 그런지도 역시 아직 잘 모르겠다. 혹시나 싶어서 수채화용으로 가지고 있는 다른 저렴한 붓으로 바꿔 칠해 보았는데, 세트로 구성된 화홍 붓보다는 느낌이 좋았다. 딱 꼬집어서 어떤 부분이 더 좋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붓 놀림이나 붓 끝의 상태, 물감을 물고 있는 상태 등 여러 가지 부분에서 미묘하게 차이가 있었다. 세필을 하나 사야겠다.
책을 보면서 몇 장 칠하고 나니 그 동안 스케치로 모아 두었던 그림들을 단순하게 표현해서 과슈로 채색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개나리를 일단 끄집어 냈는데, 책에 구성되어 있는 물감은 기본 원색이 아니고 이미 혼합해서 만들어진 색이라 개나리의 화사한 노랑을 표현할 수 있는 색이 없었다. 베이비 옐로우가 이미 너무 연한 색이라 쓸 수가 없었다. 과슈 물감을 새로 사볼까 싶어서 물감을 찾다 보니, 책에 구성된 물감은 책에 있는 그림들을 쉽게 완성할 수 있도록 별도로 조색해서 만들어진 물감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무슨 색을 짜서 써도 위화감 없이 모두 부드럽게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었는데 일반 사용자를 미리 고려해서 만들어진 물감이었다. 이 정도 물감이면 누구라도 이 책 한 권과 이 물감 한 세트로 보들보들한 그림을 그릴 수 있겠다. 입시 준비하면서 포스터칼라를 미리 한 세트를 구매해서 그림에 사용할 색을 미리 만들어서 새로운 물감통에 별도로 만들어 가져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중에 본격적으로 과슈 작업을 하게 된다면 그렇게 미리 조색해서 사용해도 좋을 것 같다. 수채화 물감도 녹색은 미리 섞어서 만들어 쓰기도 하니 과슈라고 다를 바 없다.
노랑은 해결할 길이 없어서 아쉬운대로 아이패드를 열어 개나리를 일단 그려 두었다. 책 한 권 마무리하고 과슈를 들이게 되면 시도해 볼 생각에 이미 흥미진진하다. 작은 도자기 팔레트를 쓰자니 짜고 쓰고 닦아 쓰기 너무 번잡해서 큰 사이즈의 아크릴 팔레트를 주문했다. 써보니 속이 다 시원하다. 옛날에 버린 화구박스 안에 고스란히 다 들어 있었을텐데 이제야 아쉽긴 하지만 아직 본격적으로 작업을 할지는 모르는 일이니 책 한 권 끝낼 때 까지는 참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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